정종필
어린 시절의 기억, 학습지에서 익혔던 삽화, 특정 뉴스와 광고, 특정 아나운서와 배우의 얼굴 등 작가에게 특별한 인상으로 각인된 장면이나 인물들을 반복적으로 그린다. 이를테면 '뉴스룸' 연작에 수없이 등장하는 두 인물은 언제나 '이용식 아저씨'와 '이선영 아나운서'인데, 같은 소재로 수천 번 반복된 드로잉들은 모두 같아 보이지만 천천히 들여다보면 머리, 의상, 표정, 화면구성 등에서 섬세한 변주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. 물감이나 마카를 사용하여 자연풍경이나 현실 세계를 좀 더 입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표현하는 그림을 그리기도 하지만 A4용지와 모나미 볼펜을 사용하여 마치 단어를 배열하듯 이미지를 배열하는 이 단생의 드로잉 작업을 작가는 가장 좋아하고, 그 어떤 작업보다 규칙적으로 진행한다. 하지만 부모님이 이것을 '예술작업'이라 여기지 않아 이미 수없이 버리기도 했기 때문에,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는 시간에 홀로 이 그림을 그린다.